[강국진 순회특파원 중동을 가다] (2) 이집트의 마피아 ‘낙타상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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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 2011-06-03 00:38
입력 2011-06-03 00:00

낙타 태워 사막 외딴곳 데려가 “50달러 내라” 바가지

이집트 관광하면 가장 먼저 떠올리는 곳은 어디일까. 십중팔구 피라미드일 것이다. 카이로 서쪽 기자지구에 나란히 자리한 피라미드 3기는 그 웅장한 위용만으로도 보는 사람들을 압도한다. 그렇다면 관광객들에게 이집트에 대한 이미지를 망쳐 놓는 것으로 악명 높은 곳은 또 어디일까. 정답은 이 또한 피라미드다. 비밀은 피라미드 주변 상권과 부동산, 심지어 구걸행위까지 틀어쥔 ‘낙타주인’들에 숨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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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라미드는 카이로 시내 가운데를 관통하는 나일강 서편 가장자리에 자리잡고 있다. 입장권을 받아들고 피라미드 구역으로 들어선 관광객을 제일 먼저 맞이하는 건 낙타나 말이 끄는 마차를 한 번 타라고 권하는 이들이다. 분위기에 취한 관광객들이 한번에 10달러나 되는 돈이 아깝지 않아 낙타나 마차에 몸을 싣는다. 그들은 사막으로 한번 나가보지 않겠느냐며 관광객을 유도한다. 사막의 모래바람을 꿈꾸며 “OK”라고 하는 순간 악몽은 시작된다. 외딴곳으로 가서는 갑자기 50달러나 되는 바가지 요금을 내지 않으면 사막 한가운데에 버리고 가겠다는 식으로 표정이 돌변한다. 사막으로 향하는 낙타 행렬을 보면서 현지인들은 이렇게 말한다. “불쌍한 외국인들. 또 걸려들었군.”

피라미드 주변에선 조악하게 생긴 기념품을 파는 어린이나 젊은이들이 넘쳐난다. 집요하게 물건을 들이민다. 관광객들이 싫다고 해도 개의치 않는다. 곳곳에서 관광객들은 짜증을 낸다. 그래도 물건 사라는 목소리는 개의치 않는다. 주차장 쪽으로 가면 이번엔 남루한 행색을 한 꼬마들이 맨발로 관광객을 졸졸 따라오며 애절한 눈빛으로 구걸을 한다. ‘낙타주인’과 기념품 상인, 어린 거지는 사실 한 가족이거나 친척관계다. 그들은 모두 한패다. 어릴 때부터 학교가 아니라 구걸과 기념품판매로 시작해 가업을 물려받는 이들을 카이로 시민들은 무식하고 돈만 많은 족속들로 치부한다.

더욱 놀라운 것은 피라미드 주변에 형성된 고급주택과 숙박시설 가게 등이 대부분 이들 소유라는 점이다. 맨발이나 남루한 행색은 모두 영업을 위한 소품에 불과하다. 사실 그들은 엄청난 부자다. 하루에 20명 정도만 낙타에 손님을 태워도 웬만한 공무원 한 달 월급에 맞먹는다. 오후 4시부터는 피라미드 관람을 할 수 없기 때문에 ‘낙타주인’들은 공무원 한 달 월급을 손에 쥐고 칼퇴근해서는 시내에 있는 고급 술집으로 향한다. 이들이 술집에 들어서는 순간 돈냄새를 맡은 여성 종업원들은 ‘낙타주인’을 차지하려고 한바탕 전쟁을 벌이기 일쑤다.

‘낙타주인’들은 일종의 마피아다. 수십년 넘게 아무런 법적 근거도 없이 피라미드 주변 상권을 독점하고 있는 이들은 호스니 무바라크 전 대통령 당시에도 정권과 결탁한 행태로 악명을 떨쳤다. 지난 1월 25일 민주화시위가 일어난 뒤 낙타를 탄 무리들이 시위대를 공격해 충격을 준 적이 있다. 바로 친절하게 웃으며 관광객들에게 낙타를 타라고 권했던 바로 그들이었다. 당시 ‘낙타주인’들은 시위대 때문에 관광수입이 줄어든다며 불만스러워했는데 당시 집권당 사무총장 사프와트 엘셰리프가 그런 심리를 이용해 시위대를 강제 해산시키려고 ‘낙타주인’들을 동원했다. 엘셰리프는 최근 구속됐고 현재 수사당국은 폭행 가담자들을 추적하고 있다.

‘낙타주인’들은 중동에 만연해 있는 부패와 탈법을 상징적으로 보여 주는 존재들이다. 하지만 민주혁명으로 세상이 바뀌었다. 앞으로도 좋은 시절을 누릴 수 있을지 불확실하다. 당장 관광객이 줄어 벌이가 신통찮아졌다. 피라미드 앞 공터는 지난해만 해도 관광버스로 가득 찼지만 올해 들어선 파리만 날리고 있다. 피라미드 주변에서 만난 한 늙은 낙타주인은 시위대를 ‘25’(시위가 일어난 25일을 가리킴)라고 부르면서 “타흐리르 때문에 먹고살기 너무 힘들다.”고 너스레를 떨었다.

카이로 강국진 순회특파원

betulo@seoul.co.kr

2011-06-03 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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