χ² 나오자 엎드리는 교실… 학교서 자고 학원서 열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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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재홍 기자
박재홍 기자
수정 2019-05-27 17:06
입력 2019-04-23 02:46

[수포자·영포자 만드는 학교] 서울 시내 중학교·학원 가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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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5일 서울의 한 중학교 3학년 수학 시간에 강의하는 교사에 아랑곳하지 않고 한 학생이 엎드려 있다. 이날 수업에서는 이 학생 외에도 3명이 엎드린 채 일어나지 않았다.  박지환 기자 popocar@seoul.co.kr
지난 15일 서울의 한 중학교 3학년 수학 시간에 강의하는 교사에 아랑곳하지 않고 한 학생이 엎드려 있다. 이날 수업에서는 이 학생 외에도 3명이 엎드린 채 일어나지 않았다.
박지환 기자 popocar@seoul.co.kr
“χ²=2χ²+χ-6에서 가장 먼저 해야 할 건 뭐죠?”

지난 15일 서울의 한 중학교 3학년 수학시간. 선생님이 칠판에 2차 방정식을 쓰고 풀이 과정을 묻자 교실 안이 쥐죽은 듯 조용해졌다. 학생들은 서로를 쳐다보며 눈만 껌뻑였다. 20명이 조금 넘는 학생 중 3명은 이미 책상에 엎드려 있었고, 나머지도 수업에 집중하지 않았다. 교사가 한 학생을 지목하자 아이는 자신 없는 듯 주저하며 겨우 답을 말했다. 교사는 “그렇지, 맞았어!”라며 자신감을 북돋우려 애썼지만 수업 분위기는 좀처럼 살아나지 않았다. 교사가 원리를 설명하자 그제서야 예닐곱 명의 아이가 노트에 풀이를 받아 적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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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5일 오후 6시 목동의 한 종합학원에서 진행된 중2 수학 강의 풍경. 수업 시간 내내 졸거나 딴짓을 하는 학생은 보이지 않았다. 학원에서 만난 한 학생은 “대학에 가려고 어쩔 수 없이 학원에 온다”고 말했다.  박지환 기자 popocar@seoul.co.kr
지난 15일 오후 6시 목동의 한 종합학원에서 진행된 중2 수학 강의 풍경. 수업 시간 내내 졸거나 딴짓을 하는 학생은 보이지 않았다. 학원에서 만난 한 학생은 “대학에 가려고 어쩔 수 없이 학원에 온다”고 말했다.
박지환 기자 popocar@seoul.co.kr
같은 날 오후 6시 서울 양천구 목동의 한 종합학원 중학교 2학년 수학 교실. 팽팽한 긴장감이 감돌았다. “1바이트(Byte)는 2의 세제곱 비트(bit), 1킬로바이트(KB)는 2의 열제곱 바이트…그럼 20기가바이트(GB)는 몇 비트지?” 강사가 칠판에 판서를 하는 동시에 아이들은 즉시 풀이 과정을 줄줄 읊었다. 학교가 끝나자마자 이곳으로 온 아이들은 이 수업이 시작되기 전에는 1시간 동안 중간고사 대비 문제를 풀었다고 했다. 강사는 “복잡하게 계산할 필요가 없다”며 정답 맞히는 요령을 짚었고, 아이들은 글자 하나라도 놓칠까 풀이 과정을 꼼꼼하게 받아 적었다. 아이들은 밤 10시가 돼서야 집에 돌아갔다. 이날 수업을 들은 아이들이 학교에서 중상위권이라고 귀띔한 학원 관계자는 “이렇게 하지 않으면 다른 아이들한테 밀릴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교실 속 ‘수포자’(수학 포기자)가 늘고 있지만, 공교육은 속수무책이다. 교육부의 국가수준 학업성취도 평가 결과에 따르면 지난해 수학에서 목표성취수준의 20% 이상을 달성하지 못한 기초학력미달 중학생은 11.1%로 전년 7.1% 대비 4.0% 포인트 늘었다. 교실 수학을 포기했지만, 대학은 포기할 수 없는 학생들은 학원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한 보습학원 관계자는 “맞벌이 부모가 공부에 관심이 없는 자녀를 어쩔 수 없이 학원에 보내는 경우가 아닌 이상 학원에 오는 아이들은 학교에서 하지 못한 공부를 하기 위해 온다”고 말했다. 학원에 갈 형편이 되지 못하거나 누군가 끌어 주지 않는 학생은 교실 안과 밖에서 완전히 ‘수포자’로 굳어진다. 사교육 의존도가 커질수록 공교육은 설 자리를 잃는 악순환이 반복된다. 학원에서 만난 한 중학생은 “학교에서는 공부가 안 되니 학원에 오고, 학원에 다니지 않으면 대학에 못 들어간다고 하니 오는 것”이라고 말했다.

사교육걱정없는세상의 최수일 수학사교육포럼 대표는 “국어와 사회는 토론과 협업 등 자기주도 학습 방향으로 가고 있는데 수학은 여전히 공식을 외우고 이를 대입해 답을 맞히는 과거 방식에 머물러 있다”면서 “수능에서 ‘킬러문항’이 계속 나오는 한 학부모는 자녀를 사교육으로 내몰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박재홍 기자 maeno@seoul.co.kr

김소라 기자 sora@seoul.co.kr

2019-04-23 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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