흥미로운 신라의 금속공예…동궁과 월지의 구겨진 유물은 [클로저]
강민혜 기자
수정 2022-06-25 16:09
입력 2022-06-25 16:09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는 지난 2016년 11월 동궁과월지에서 발견한 금박 유물 두 점에 대해 본래 새, 꽃 그림인 ‘화조도’를 새긴 것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출토 당시 구겨졌던 유물 두 점을 펴보니 세밀한 공예가 필요한 금박 장식물이라는 게 밝혀진 겁니다.
순도 0.3g의 금이 사용된 이 유물은 가로 3.6㎝, 세로 1.17㎝, 두께 0.04㎜입니다. 세밀한 선은 0.05㎜ 이하로 머리카락 굵기보다 얇습니다. 연구자들은 이 그림에 대해 실크로드와 신라의 특징 모두가 들어갔다고 설명합니다. 게다가 순금에 세밀한 작업을 한 것이라 더 주목받고 있습니다.
● 고분출토물 아닌 금속공예 유물금박은 전문 장인이 해야 하는 일입니다. 수작업으로 이뤄지는데, 하나의 문양을 새겨넣을 때마다 금을 두드리고, 바르고, 말리고, 붙이는 등의 세밀한 작업이 필요해요. 근래에는 기계로 하는 일도 있지만, 여전히 세밀한 일에는 금속 장인의 수작업이 들어갑니다.
이번 일이 주목받는 건, 신라 시대 금속공예 출토물들이 대개 고분출토물이었기 때문입니다. 이번에 발견된 유물 두 점은 하나의 작품이 떨어져 있던 것으로, 이를 합쳐 하나의 작품이 되는 것도 큰 의미입니다. 또한, 아직까지 정확한 용도는 파악되지 않았으나 나무 등에 붙였던 것으로 추정되고 있어요.
또한 매우 세밀한 작업이 필요했을 것으로 보이기에, 이 또한 당대의 높은 금속공예의 수준을 증명하는 것이란 분석이 나옵니다.
화려하고 상징적인 금관의 용도에 대한 것, 디자인의 기원 관련한 것 등 분석도 다량 나왔습니다. 대개 신라가 주변국의 다양한 문화를 받아들여 자신들만의 화려한 금속공예 문화를 이뤘다고 보고 있죠.
도굴이 어려웠던 덕분에 신라 고대 적석목곽분 등에서 다량 출토된 유물을 토대로 신라 금속공예에 대한 연구는 주로 진행됐습니다.
금관 하면 무엇이 떠오르나요. 권위의 상징으로 곡옥을 주렁주렁 매단 왕이 떠오를지 모릅니다.
그러나 신라의 금관은 실제 권위를 보이기 위한 머리 위의 왕관 역할이 아닌 죽은 이의 얼굴을 가리는 용도였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학계의 의견은 분분합니다만 그 크기와 장식이 평소 사람이 쓰기엔 지나치게 무겁고 내세적 의미가 있다는 설이 있죠.
고분에서 출토된 이 금관들, 놓여있던 위치도 이 설에 설득력을 더합니다.
반면 신라 고분에서 출토돼 여러 방식으로 제작된 금속공예 장신구들은 지배층의 신분을 상징하는 수단이란 해석도 있습니다.
동궁과 월지의 서로 다른 곳에 떨어져 있던 유물 두 점이 또 어떤 새 금속공예 기술의 증거가 될지 관심이 쏠립니다.
강민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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