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세상] 미국 의회는 트럼프를 견제할 수 있을까/서정건 경희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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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 2023-12-28 23:40
입력 2023-12-28 23:40

내년 트럼프 귀환 가능성에 세계가 긴장
미 의회도 동맹 파기 등 돌발 행동에 우려
‘트럼프 리스크’에 우리도 만반의 준비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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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정건 경희대 교수
서정건 경희대 교수
최근 미국 상원에서 통과된 케인ㆍ루비오 수정안은 도널드 트럼프가 재집권하면 벌어질 미국 외교의 혼란상을 가늠케 한다. 민주당 상원의원인 팀 케인과 공화당 상원의원인 마르코 루비오가 제안한 초당파적 법안에 따르면 어떤 미국 대통령도 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를 탈퇴하려면 미국 상원의 승인을 얻어야 한다. 만일 대통령이 일방적으로 동맹을 파기하는 경우 미국 의회는 이행 비용을 일절 지원하지 않는다는 것까지 못 박고 있다. 1기 행정부 당시 동맹을 폄하하고 분담금을 강요했던 트럼프가 다가올 대선에서 승리한다면 미국 글로벌 리더십의 핵심인 유럽과의 협력을 내팽개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에서 비롯된 의회의 대비책이다. 주한 미군의 규모와 관련해서도 유사한 조항이 미국 국방부 예산안에 포함돼 법률로 구비돼 있다. 하지만 이는 하원에서 만들어졌기 때문에 상원 수준의 케인ㆍ루비오 수정안처럼 강력한 의미를 띤다고 보기는 어렵다. 트럼프의 귀환을 막연히 걱정만 하기보다는 우리 외교가 당장 무엇부터 시작해야 하는지 알려주는 사례다. 케인 의원은 한인 커뮤니티의 영향력이 큰 버지니아주 출신이고 루비오 의원은 한국 싱크탱크 초청으로 자주 방한한 적이 있는 인물이다.

실제로 미국 대통령이 하루아침에 동맹을 파기한 적도 있다. 잘 알려진 대로 1979년 1월 1일 미국과 중국은 국교 정상화를 발표했다. 의회의 별도 승인 절차가 필요 없는 국교 수립 과정은 양국의 대사관 상호 설치로 충분히 가능했다. 그런데 당시 지미 카터 미국 대통령은 “하나의 중국”을 요구하는 중국 덩샤오핑의 뜻에 따라 1954년 이후 지속됐던 미국ㆍ대만 상호방위조약을 폐기했다. 당연히 대만을 지지하던 공화당을 중심으로 한 미국 의회는 크게 반발했고 연방 대법원에 소송을 제기했다. 조약을 파기할 때도 미국 상원 3분의2의 동의를 얻어야 한다는 취지였지만 결국 연방 대법원은 정치적 문제라는 이유로 개입을 거부했다. 대신 미국 의회는 압도적 찬성으로 대만 관계법을 제정함으로써 대만과의 무기 거래 및 문화 교류의 길을 열어 둔 적이 있다. 2015년 당시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이란과 전격적으로 핵 협상을 맺었을 때의 미국 의회 대응 역시 이란 핵 검토법이라는 법률 제정을 통해 사후 감독 권한을 확보하는 것이었다. 외교를 둘러싼 미국 의회와 대통령의 관계는 이처럼 헌법과 법률, 정치와 외교라는 변수들이 얽혀 있는 가운데 예측하기 어려운 때가 많다.

전 세계가 새해 미국 대선을 통해 트럼프가 다시 돌아올 가능성을 놓고 설왕설래 중이다. 이달 일본의 세미나에서 만난 한 자민당 의원 역시 트럼프가 낙선되기만을 기도하는 중이라고도 했다. 예측불허의 미국을 상대하고 싶지 않다는 속내의 표출이었다. 트럼프가 바이든에게 앞서는 여론조사와 더불어 바이든의 유약한 이미지가 겹치면서 벌써 여기저기서 연구와 모임이 진행되고 정부도 대비 모드에 들어간 것으로 보인다.

이처럼 사람들의 관심은 온통 트럼프에게 쏠려 있지만 사실 트럼프 자신도 스스로의 행보를 예측하지 못하는 것 아닐까 싶다. 그렇더라도 트럼프가 다시 집권할 때를 대비해 의회, 정당, 여론, 언론, 이익집단, 연구소 등 미국 정치가 가진 견제와 균형의 기능과 역량에 대해서는 반드시 분석해 두어야 한다. 이들은 어느 정도 예측도 가능하고 접근도 용이하기 때문이다. 물론 법적 차원을 넘어서는 대통령의 일방적인 외교 가능성이 남아 있으나 생각보다는 여전히 시스템으로 움직이는 나라가 미국이다. 미국의 제왕적 대통령은 외교 분야에만 적용되는 표현이다. 게다가 대표적인 사례로 꼽히는 리처드 닉슨 전 대통령과 아들 부시 전 대통령 모두 엄청난 저항과 초라한 퇴장을 경험한 바 있다. 달라질 미국에 대한 대비책을 하나씩 차분하게 준비하는 새해가 되길 기대한다.
2023-12-29 2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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