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르소설은 허깨비? 가짜라 더 아름다워[오경진 기자의 노이즈캔슬링]

오경진 기자
오경진 기자
업데이트 2024-01-05 00:24
입력 2024-01-05 00:24

<5> 33세 장르소설가 위래

자유로운 상상
집요하게 밀어붙여
‘종말문학 공모전’ 당선
“장르성 가치 있어
문학성과 동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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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르소설 작가 위래의 캐릭터. 정체를 알 수 없는 그로테스크한 인형의 모습이다. 위래 작가 제공
장르소설 작가 위래의 캐릭터. 정체를 알 수 없는 그로테스크한 인형의 모습이다.
위래 작가 제공
“미적인 측면에서 보자면 진짜보다는 가짜가 낫다. 천연 다이아몬드 원석과 세공된 인조 다이아몬드 중 아름다운 건 후자다. 생화보다 조화를 좋아했다는 김춘수 시인의 이야기를 좋아한다.”

소설가 위래(33)는 장르소설의 미학을 이렇게 압축했다. 여느 장르소설 작가처럼 그 역시 얼마간 베일에 싸여 있었다. 사진 촬영을 좋아하지 않는다며 인터뷰 기사에 캐릭터를 사용하길 희망했다. 정체를 알 수 없는 그로테스크한 인형…. ‘위래’도 필명이다. ‘위아래’에서 ‘아’ 자를 뺀 것으로 별다른 의미는 없단다. 다소 낯설지만 요즘 장르소설 업계에서 이 정도 신비주의는 꽤 흔한 전략이다.

“장르소설의 인기가 높아진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장르마다 사정이 다르다. 영화·드라마 제작 지원도 많은데, 문제는 ‘영상화할 수 있는 소스를 제공하라는 요구다. 소설의 가치는 제작비를 상관하지 않는 자유로운 상상에 있다. 다양한 장르의 작품을 발표할 지면이 더 많아져야 한다.”

주고받은 이메일에서 확인한 위래의 문장은 딱딱하기 그지없었다. 소설 속 문장도 그렇다. 톡 건드리면 부러질 듯 위태롭다. 하지만 하고자 하는 이야기의 본질에서 벗어나지 않고 끝까지 파고든다. 소설은 본디 거짓의 예술. 장르소설은 그 거짓을 누구보다 집요하고 뻔뻔하게 밀어붙인다는 점에서 그의 문장과 직업은 퍽 잘 어울리는 것 같기도 하다.

“작가의 브랜드는 창작물만으로도 담보할 수 있다. 창작 환경이 오프라인 위주일 땐 홍보를 위해서라도 작가를 드러냈다. 이젠 아니다. 불필요한 정보는 굳이 공개하지 않는다.”

웹을 기반으로 활동하는 그는 말보다는 작품으로 이야기하는 걸 즐기는 듯하다. 2010년 네이버 ‘오늘의문학’에 실린 ‘미궁에는 괴물이’로 첫 고료를 받으며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지난해 황금가지 출판사의 ‘종말문학 공모전’에 당선됐고 웹소설 ‘슬기로운 문명생활’은 웹툰으로도 연재 중이다. 오는 11일 단행본 ‘허깨비 신이 돌아오도다’(아작)도 출간된다. 사물의 공간과 기억을 들여다보는 ‘시공 감응’ 능력자들이 사람을 제물로 삼는 괴물들과 맞선다는 재밌는 상상력의 소설이다.

“로저 젤라즈니는 내 소설의 기원이다. 이언 뱅크스가 보여 준 잔인함은 아직도 흉내 내는 중이고 차이나 미에빌의 기이함을 재현하려 한다. 망가진 캐릭터는 니시오 이신, 어두운 분위기는 오쓰이치, ‘이런 걸 써도 된다’는 긍정은 듀나에서 왔다. 김보영의 결말을 보고 ‘반전이 없으면 소설이 아니다’라는 생각을 가졌다. 그리고 여전히 이영도가 보여 준 세계에서 소설을 쓴다.”

존경하는 작가가 누구인지 물었다. 위래는 국내외 걸출한 장르소설 거장을 여럿 호명했다. 하나같이 빛나는 고전을 써낸 이들이다. 그럼에도 문단은 이들의 작품이 과연 진지한 ‘문학성’을 갖췄는지 의심의 눈초리를 쉽사리 거두지 않는다. 장르문학의 예술성은 언제쯤 오롯이 인정받을 수 있을까.

“장르성이 문학성을 해친다는 신화가 있다. 나는 이런 신화를 용인하지 않는다. 독자에겐 읽게끔, 작가에겐 쓰게끔 한다는 점에서 장르성은 문학성과 동등한 지위를 가진다. 그동안 장르성은 비평적으로 의미 있게 다뤄지지 못한 게 사실이다. 문학은 분명 문예 전반을 지칭하지만, 여전히 장르소설은 문학성이 모자란 것으로 취급되곤 한다. 문학성이라는 개념이 확장돼 앞으로 장르소설의 가치까지도 포섭해야 한다고 믿는다.”

오경진 기자
2024-01-05 1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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