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할머니 살해, 중형 받자 누나는 ‘지적장애’ 동생 부둥켜안고 오열했다[전국부 사건창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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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철욱 기자
수정 2024-09-14 13:30
입력 2024-09-14 1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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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신문 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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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적장애 2급’ 손자가 범행
배후에 누나 “용돈 두 배” 부추겨
“할머니가 관리하는 돈 쓰고 싶어”
설 전날인 지난 2월 9일 오후 7시부터 부산 남구의 한 빌라 화장실에서 할머니와 손주가 말다툼을 벌이고 있었다. 할머니는 당시 78세, 손자 A씨는 24세로 지적장애 2급(지능지수 35~49로 6~8세 정도)이다. A씨는 어눌한 말투로 “왜 식비 때문에 내 회사 사람들을 괴롭히느냐”, “왜 아버지 유품을 마음대로 처분했었느냐”고 따졌다. 할머니는 화를 내면서 “헛된 돈이 빠져나가니까 그렇지”라고 꾸짖었다.

급기야 A씨는 주먹으로 할머니의 얼굴 등을 수차례 폭행했다. 그는 키 174㎝에 체중 80㎏에 달했고, 할머니는 키 160㎝에 몸무게 62㎏이었다. 할머니가 공격을 막으려고 손주의 왼쪽 엄지손가락을 깨물자 머리로 얼굴을 들이받았다. 이어 화장실 벽 모서리에 머리를 부딪히게 한 뒤 몸 위에 올라타 한참 동안 눌렀다. 할머니가 움직이지 않자 화장실 밖으로 옮긴 뒤 119에 “할머니가 쓰러졌다”고 신고했다. 이때가 오후 11시쯤이었다. 할머니는 병원으로 이송됐으나 ‘기계적 질식’ 등으로 사망선고를 받았다.

A씨는 범행을 부인했지만 경찰이 할머니의 상처와 화장실의 타일 파손 등을 들어 추궁하자 곧바로 자백했다. A씨의 휴대전화 통화와 카카오톡 메신저 등을 분석해보니 그 배후에 친누나 B(28)씨가 있었다. 지적장애가 있는 동생의 범행을 설계한 것이었다. 남매의 범행 모의는 지난해 10월부터 시작됐다.

그해 10월“할머니가 빨리 죽었으면 좋겠네. 너는 안 그렇냐” “돌아가시면 좋겠어”, “누나와 살다 혼자 있으니까 허하다고 명절에 네가 찾아가면 의심하지 않잖아” “어”/ 12월“할머니가 돌아가시면 네 용돈을 5만원에서 두 배로 올려줄 건데. 네 냉장고부터 빨리 바꾸자” “너무 좋다”, “설날이나 추석, 이런 날에 찾아가면 좋겠다” “오케이”.

1심 판결문은 ‘남매는 할머니를 살해한 뒤 B씨가 A씨의 재산을 관리하기로 공모했다’면서 ‘살해 방법으로 곰팡이나 납가루를 미숫가루 등에 타 먹이는 것을 동생에 제안했고, 실제로 둘 다 곰팡이를 직접 배양하기도 했다. 그러다가 남동생이 직접 몸이나 도구로 할머니를 살해하기로 변경했다’고 적었다.

B씨는 지난 2월 초 “점프 뛰어 몸통 박치기해야 해. 구급차 오면 울어야지. 그리고 할머니가 평소 어지럼증과 고혈압이 심해 넘어져서 사고로 죽은 것처럼 말하라”고 가르쳤고, 동생은 “응”하고 응수했다.

이같은 공모가 오가고 2월 9일, A씨는 오전 5시 30분쯤 경기 안산시 주거지에서 충남 천안역으로 지하철을 타고 와 누나 B씨를 만났다. B씨는 오전 8시 29분 부산행 무궁화호 기차표와 함께 설 선물로 굴비와 포도를 건넸다. 이튿날 저녁 부산에서 천안으로 돌아오는 기차표도 예매해줬다. 동생에게 기차 타는 법도 여러 번 일러줬다. A씨가 할머니 집에 도착한 것은 9일 오후 2시 16분. A씨는 할머니의 안부와 근황을 묻고 집 정리를 도우며 시간을 보낸 뒤 밤이 찾아오자 온갖 불만을 터뜨리며 범행을 저질렀다.

흉악 범죄가 급증합니다. 우리 사회와 공동체가 그만큼 병들어 있다는 방증일 것입니다. 직시하고 아우성치지 않으면 나아지지 않습니다. 사건이 단순 소비되지 않고 인간성 회복을 위한 노력과 더 안전한 사회 구축에 힘이 되길 희망합니다.


A씨 남매는 부산에서 태어났으나 부모가 이혼하자 2004년 안산으로 옮겨 아버지, 할아버지 등과 함께 살았다. 할머니는 남편이 2011년 사망하기 전까지 새 할머니와 살아 부산에 혼자 남았다. B씨는 충남 모 대학을 졸업하고 2016년 결혼해 천안에서 지냈다. 그해 7월 할머니는 친아들인 A씨 남매의 아버지가 병에 걸리자 안산으로 와 아들과 손자 A씨를 보살폈으나 아들이 숨지자 연말에 부산으로 돌아갔다.

A씨는 안산에서 혼자 살았다. 기초생활수급비와 장애인연금을 받으며 고등학교를 나왔고, 2020년 7월부터 발달장애인의 경제활동을 돕는 안산 모 조합에서 일하면서 매달 75만원의 월급을 받아 생활했다.

두 손주 사랑해 앞날 돕던 할머니
‘목돈 위해 저축’ ‘주택청약’ ‘주식’
남매 ‘간섭, 불편’하다며 불만 증폭
할머니는 부산으로 돌아갔지만 장애가 있는 손자 A씨를 꼼꼼히 챙겼다. 부산 간 이후 한 번도 만나지 않았지만 전화로 반찬 만드는 법, (장애인) 복지혜택 받는 방법을 알려줬다. 또 A씨 명의로 은행 및 증권 계좌를 개설해 저축하며 재산을 관리해줬다. 손자에게 전셋집이라도 마련할 목돈을 만들어 주려고 A씨의 월급에서 용돈 5만원을 제외하고 나머지를 꼬박꼬박 저축했다. 자신도 기초생계급여 등을 알뜰히 모아 사건이 발생한 부산의 빌라를 매입했던 경험이 있었다. 손자 A씨의 명의로 주택청약도 들어줬다.

손녀 B씨도 지난해 11월 할머니가 “너의 이름 주식계좌에 1억원 상당 주식이 있다”고 한 말을 들었다.

이 과정에서 갈등이 불거졌다. 할머니는 A씨 월급이 적게 들어오면 손자 직장에 전화를 걸어 이유를 물으며 따졌다. A씨의 활동을 돕는 활동관리사가 유료 TV 프로그램을 결제한 것을 알고 “해고하라”고 손자를 야단쳤다. 손자가 이런 지시나 정보를 잘 알아듣지 못하면 손녀 B씨에게 연락해 “내가 얘기한 걸 못 알아들으니 네가 설명해줘라.”, “A에게 필요한 ○○서류 좀 떼라.” 등 귀찮은 일과 심부름을 시켰다.

할머니와 손자가 크게 대립했던 것은 A씨가 다니는 협동조합에서 점심값으로 매달 14만원을 받는 문제였다. 할머니는 손자 직장에 전화해 “내 손자는 집에서 점심을 먹겠다”고 했다. 조합 대표는 ‘1시간 추가 근무’하면 무료로 주겠다고 양보했다. 이즈음 A씨가 죽음을 시도하자 조합 대표는 그에게 새로운 작업을 소개했다. 이 작업은 점심 제공이 안돼 이걸로 할머니와 A씨는 한바탕 말다툼을 벌이기도 했다.

A씨는 할머니 때문에 자기 월급을 다 쓰지 못하고, 주변 사람들이 불편해진다고 생각했다. B씨도 할머니의 말을 동생에게 대신 전하는 역할에다가 할머니와 동생 주변 사람이 갈등할 때 중재하는 일이 반복되자 갈수록 불만이 쌓여갔다. 그는 동생과 대화할 때마다 비속어를 섞어 할머니에게 욕설을 퍼부었고 인터넷에서 ‘곰팡이급성사망, 납가루’와 함께 ‘지적 2급 살인’을 검색하며 살인청부업자처럼 움직였다.

B씨는 수사 및 재판 과정에서 “할머니에게 장기간 억압과 폭언을 당해 힘든 마음을 격정적인 표현을 드러냈을 뿐 살해를 모의한 것은 아니다”면서 “사건 당일 동생이 천안에서 부산으로 떠날 때도 ‘실제로 할머니를 죽게 해서는 안 된다’고 당부했다. 사리판단이 부족한 동생이 우발적으로 한 짓”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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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찰은 지난달 9일 결심공판에서 각각 징역 24년을 구형하며 “남매는 친할머니를 살해하고 사고사로 위장해 그 재산을 맘대로 쓰고 싶어했지만 할머니는 유일한 피붙이인 남매를 위해, 특히 지적장애가 있는 A씨를 위해 동사무소를 들락거리며 복지혜택을 공부하는 등 손주들을 사랑하고 있었다”고 밝혔다.

징역 15년, 누나 ‘행위지배’ 주도
동생 ‘패륜범죄 실행’/ 남매 항소
누나, 동생 껴안고 “미안해” 오열
1심을 맡은 부산지법 동부지원 형사 1부(부장 이동기)는 같은달 30일 존속살해 혐의로 기소된 B씨에게 “할머니가 남매를 모욕하고 경제적으로 착취했다는 객관적 자료가 없다. 동생을 말렸다는 자료도 찾을 수 없다. 설령 그게 사실이라도 공모관계에서 이탈했다고 볼 수 없다”고 징역 15년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또 동생 A씨에게도 “지적장애 2급으로 누나가 범행을 계획, 주도한 측면이 있다고 하더라도 반사회적 패륜 범죄를 저지른 것은 A씨다”며 누나와 똑같이 징역 15년을 선고했다. 또 “A씨가 범행 후 누나와 통화내역을 지우고 할머니가 사고를 당한 것처럼 신고하는 등 범행을 은폐하려 했다”고 했다.

임상심리분석관들은 ‘A씨는 중증 지적장애로 할머니를 두렵고 엄격한 존재로 생각하던 차에 누나와 이를 공유하면서 부정적 인식이 강화돼 지시나 설명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일 가능성이 있다’고 분석했다.

재판부는 누나 B씨에 대해 “자신에게 생활·정서적으로 많이 의지하는 동생에게 할머니 살해동기를 강화하고 범행계획을 구체화한 뒤 이를 수행하도록 지시하며 행위지배한 것으로 보인다. 또 수사가 시작되자 동생에게 자신과의 통화내역을 삭제하도록 지시하고, 범행을 말렸다고 변명하며 동생에게 책임을 떠넘기는 태도를 보인다”면서도 “할머니로 인해 스트레스를 크게 받은 것으로 보이는 점과 남편 등 가족이 선처를 탄원하는 점을 고려했다”고 덧붙였다.

남매는 재판부가 양형의 이유에 관해 설명할 때 손을 서로 잡으며 눈물을 펑펑 흘렸다. 누나 B씨는 둘 다 중형이 선고되자 지적장애 동생을 한동안 부둥켜안고 연거푸 “미안하다”고 사과하면서 오열했다.

둘은 모두 ‘1심 형이 무겁다’고 항소했다.

이천열·정철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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