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안에 존재하는 또 다른 자아… ‘골룸’의 원천이 되다

손원천 기자
수정 2025-03-07 02:04
입력 2025-03-07 02:04
골렘/구스타프 마이링크 지음/김재혁 옮김/민음사/408쪽/1만 7000원

민음사 제공.
여기는 중세 체코 프라하의 유대인 게토(빈민가). 신비주의와 오컬티즘(초자연적 현상, 숨겨진 힘 등을 추구하거나 연구하는 것)이 횡행하던 이곳에서 골렘이 태어난다. 골렘은 한 유대교 랍비가 진흙으로 빚어 만든 ‘영혼 없이 움직이는 인형’이다. 이빨 사이에 부적을 끼우는 순간 생명을 얻는다. 낮의 골렘은 온갖 허드렛일을 도맡아 하며 충실한 하인으로 지낸다. 한데 주인이 잠자리에 들기 전 부적을 빼지 않거나, 부적에 새겨진 글씨가 훼손되면 난폭해진 골렘이 미쳐 날뛰기 시작한다. 1970년대 우리에게 인기를 끌었던 ‘중국형 좀비’ 강시를 연상하면 알기 쉽겠다.
‘골렘’은 프라하에 전해 오는 유대인 골렘 전설을 모티브로 지은 소설이다. 1915년에 처음 출간됐다. 약간의 포맷만 바꿨을 뿐 전설 속 내용을 대부분 수용하고 있다. 신비주의 소설이나 고전 추리소설을 즐기는 이라면 단박에 빠져들 정도로 문체가 인상적이다.

작가는 골렘을 두 가지 측면으로 해석한다. 첫째는 어둡고 미로 같은 게토 지역에 감도는 집단 심리다. 성스러움과 악마적 기운이 기묘하게 얽혀 게토의 건물과 사람들 사이에 흐르고 있다는 것이다. 골렘은 한 세대에 한 번, 그러니까 33년마다 한 번씩 나타나 게토 주민들을 공포로 몰아넣는다.
둘째는 우리 안에 존재하는 또 다른 자아다. 사실 작가가 보다 중요하게 다루는 것도 이 부분이다. 주인공 페르나트는 게토의 지하 통로를 헤매다 올라간 방에서 또 다른 자아를 체험한다. 그가 본 것은 유령이 아니라 자기 의식의 반영, 즉 특정한 상황에서 등장하는 도플갱어다.
골렘은 무려 110년 전에 탄생한 캐릭터다. 한데 여전히 연극, 영화 등의 주요 소재로 쓰인다. 영화 ‘반지의 제왕’에 나오는 다중인격체 ‘골룸’의 원형이 바로 이 골렘이다. 독일에선 최초의 판타지 작품으로 꼽힌다.
책에는 1931년 후고 스테이네르프라크가 그린 25점의 골렘 삽화(사진·석판화)가 함께 담겼다. 음울한 유대인 게토를 묘사한 그림이 사진보다 강렬하다. 스테이네르프라크가 마이링크에게 보낸 편지, 책을 번역한 김재혁 고려대 명예교수와 마이링크의 가상 인터뷰 등도 담겼다. 독자들이 독일 판타지 문학의 기틀을 세운 저자의 문학 세계를 좀더 쉽고 넓게 이해할 수 있도록 돕는다.
손원천 선임기자
2025-03-07 2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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