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옆집 아저씨’ 전국 무대 등판…“이제 4쿼터, 공은 우리 손에”
이재연 기자
수정 2024-08-23 03:20
입력 2024-08-23 03:20
월즈, 美민주당 부통령 후보 수락
“4쿼터다. 뒤지고 있지만 우리는 공격 중이고 공은 우리에게 있다. …우리는 계속 앞으로 나아갈 것이다. 그래야 노동자가 우선이고 의료와 주거가 인권이며 정부가 여러분의 방에 지옥 같은 일을 하지 않는 나라를 만들 수 있다.”
미국 시카고 유나이티드센터에서 열린 민주당 전당대회 셋째 날 부통령 후보인 팀 월즈 미네소타 주지사는 ‘옆집 아저씨’답게 소박하지만 흡인력 있는 후보 수락 연설로 큰 호응을 끌어냈다. 21일(현지시간) 전대 현장은 민주당의 유력 인사들이 총출동하고 세계적인 음악가 스티비 원더와 존 레전드, 유명 방송인 오프라 윈프리, 계관시인 어맨다 고먼이 무대를 장식한 그야말로 축제의 장이었다.
이날 밤 연단에 오른 월즈 주지사는 청중의 환호에 “와우”라는 감탄사를 내뱉으며 객석을 향해 감사의 몸짓을 보였다. “나는 이런 큰 연설을 많이 한 적은 없지만 격려 연설은 많이 했다”고 말문을 연 뒤 “자유라고 할 때 우리는 더 나은 삶을 만들 자유, 의료 지원을 결정할 자유, 총에 맞을 걱정 없이 학교에 다닐 자유를 말한다”고 했다.
공화당 후보 도널드 트럼프·JD 밴스 팀을 ‘이상하고(weird) 위험한’ 인물로 규정하며 “이들에 대한 페이지를 넘길 준비가 돼 있다”고 말했다. 이어 “우린 다시 돌아가지 않는다”고 목소리를 높이자 청중들도 “우린 돌아가지 않는다”고 연호했다.
이날 월즈 주지사는 겸손하되 힘차게 ‘해리스 대통령’ 만들기에 올인했다.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은 우리 삶을 개선하는 데 기쁨으로 임할 것”이라며 “우리는 해리스 부통령을 다음 대통령으로 만들 기회를 가졌다”고 강조했다.
특히 대선을 풋볼에 비유하며 “해리스는 경험이 풍부한 준비된 선수다. 한 번에 1인치씩, 1야드씩 나아가자. 한 번에 전화 한 통, (집) 노크 한 번, 한 번에 5달러(약 6700원)를 기부하자”면서 총공세를 요청했다.
월즈 주지사는 난임 치료로 어렵게 낳은 딸의 이름을 ‘희망’(호프)이라고 지은 사연을 소개하면서 가족의 가치를 이야기했다. 부인 그웬과 호프, 아들 거스가 벅찬 듯 눈물을 흘리며 월즈 주지사에게 손을 흔들었다.
연설에 앞서 월즈 주지사의 옛 풋볼팀 제자 15명이 유니폼을 입고 깜짝 등장했다. 청중들은 ‘코치 월즈’ 손팻말을 들고 일제히 환호했다.
제자였던 벤저민 잉그맨은 연사로 나와 “월즈가 밀린 급식비를 내지 못하는 학생을 돕고자 추가수당을 받으려고 7학년 농구, 육상팀 코치까지 맡았다”며 “그는 우리가 서로 신뢰하도록 도왔다. 리더십은 통했고 7학년 육상팀도 풋볼팀처럼 주 챔피언 타이틀을 땄다”고 했다.
이날 민주당을 지지해 온 윈프리는 “자유는 공짜가 아니다”라며 “난센스가 아닌 존엄, 상식이 있는 투표를 하자”고 역설했다.
그는 미국의 가치를 말하며 “집이 불탈 때 집주인의 인종, 종교, 투표 성향을 묻지 않고 생명을 구하는 데 최선을 다할 뿐이다. 만약 그 집이 아이가 없는 ‘캣 레이디’의 집이어도 우리는 그 고양이도 구하려 할 것”이라고 했다. 공화당 부통령 후보인 밴스 상원의원이 아이 없는 여성을 캣 레이디라며 성차별적 공격을 한 것을 저격한 셈이다.
빌 클린턴 전 대통령도 유머 연설에 동참했다. 그는 트럼프 전 대통령에 대해 “자신에 대해서만 말한다. 무대에 오르기 전 ‘나 나 나’(me me me) 하며 입을 여는 테너 가수 같다”며 “해리스는 대통령이 되면 매일 ‘당신 당신 당신’(you you you)으로 시작할 것”이라고 대비했다. 이어 “가짜 이슈에 주의가 분산되거나 (승리를) 과신할 때 승리가 우리에게서 멀어지는 것을 목격했다”며 8년 전 대선에서 트럼프에게 당했던 패배를 환기시켰다.
낸시 펠로시 전 하원의장, 조시 셔피로 펜실베이니아 주지사, 피트 부티지지 교통부 장관, 웨스 무어 메릴랜드 주지사 등 당 원로뿐 아니라 차기 주자들이 총출동해 이날 해리스·월즈 팀을 응원했다.
미 언론은 월즈 주지사의 연설을 집중 보도하며 이날부터 민주·공화 양당의 ‘흙수저’ 부통령 대결도 본격화됐다고 보도했다. 월즈 주지사의 상대인 밴스 상원의원은 오하이오주 힐빌리(동부 애팔래치아산맥 근처 시골뜨기를 지칭) 출신 편모 가정에서 태어나 벤처금융가이자 변호사로 자수성가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이름 없던 월즈가 소박한 매력으로 미래 지향적 메시지를 내며 트럼프를 꼬집었다”고 평가했다. CNN은 자사 분석가 시몬 파테의 말을 인용해 “사소한 인생 경험들이 잠재적으로 강력한 힘을 발휘했다”고 전했다.
시카고 이재연 특파원
2024-08-23 1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