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살된 헤즈볼라 수장… ‘피의 보복’ 치닫는 중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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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지영 기자
류지영 기자
수정 2024-09-29 23:34
입력 2024-09-29 23:34

이스라엘 표적 공습에 나스랄라 폭사

하마스 1인자 암살 두 달 만에 ‘제거’
이란 하메네이 “헤즈볼라 전폭 지원”
네타냐후 “때리면 우리도 친다”경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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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군이 레바논 베이루트 남부 다히예를 공습해 친이란 무장정파 헤즈볼라 수장 하산 나스랄라가 사망한 다음날인 28일(현지시간) 레바논 남부 항구도시 시돈에서 레바논과 팔레스타인 주민들이 그의 초상화를 들고 구호를 외치며 이스라엘을 규탄하고 있다. 30년 넘게 헤즈볼라를 이끌던 나스랄라의 사망을 계기로 이란과 미국이 가자전쟁에 참전해 중동전으로 확산할 것이라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시돈 AP 연합뉴스
이스라엘군이 레바논 베이루트 남부 다히예를 공습해 친이란 무장정파 헤즈볼라 수장 하산 나스랄라가 사망한 다음날인 28일(현지시간) 레바논 남부 항구도시 시돈에서 레바논과 팔레스타인 주민들이 그의 초상화를 들고 구호를 외치며 이스라엘을 규탄하고 있다. 30년 넘게 헤즈볼라를 이끌던 나스랄라의 사망을 계기로 이란과 미국이 가자전쟁에 참전해 중동전으로 확산할 것이라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시돈 AP 연합뉴스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 무장정파 하마스 최고 정치지도자 이스마일 하니야를 제거한 지 두 달 만에 레바논 무장정파 헤즈볼라 수장 하산 나스랄라까지 암살하면서 중동 지역 전운이 최고조에 달했다.

이란의 군사정치동맹 ‘저항의 축’ 가운데 최정예 전력으로 평가받던 헤즈볼라가 순식간에 무너지자 이란 최고지도자 아야톨라 세예드 알리 하메네이가 직접 나서 “모든 무슬림은 헤즈볼라를 지원하라”고 선언했다.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도 “우리는 누구든 때릴 수 있다”며 이란과의 결전을 각오하고 있다고 응수했다.

네타냐후 총리는 28일(현지시간) 미국 뉴욕 유엔 총회 일정을 마치고 귀국한 뒤 영상 연설을 통해 “나스랄라는 이란 ‘악의 축’의 중심이자 핵심 엔진이었다”면서 “우리 적들은 이스라엘이 파멸의 길로 가고 있다고 생각하겠지만 우린 지금 역사적 전환점에 와 있다”고 발표했다. 이어 텔아비브 이스라엘군(IDF) 본부를 찾아 하메네이를 겨냥해 “중동에서 이스라엘의 무기가 닿지 않는 곳은 없다”고 경고했다. 지난해 10월 시작한 가자전쟁이 이란과 미국의 참전으로 확대될 가능성을 열어 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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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일(현지시간) 레바논 베이루트 교외 하레트흐레이크 일부 지역에 이스라엘의 공습으로 파괴돼 불길이 치솟고 있다. 레바논 무장정파 헤즈볼라의 본부가 있는 이곳에서 지난 7월 30일 헤즈볼라의 고위 사령관인 푸아드 슈크르가 암살됐다. 헤즈볼라 수뇌부 제거 작전을 수행하는 이스라엘에 의해 이날 다히예에서는 최고지도자인 하산 나스랄라가 폭사했다. 하레트흐레이크 AFP 연합뉴스
27일(현지시간) 레바논 베이루트 교외 하레트흐레이크 일부 지역에 이스라엘의 공습으로 파괴돼 불길이 치솟고 있다. 레바논 무장정파 헤즈볼라의 본부가 있는 이곳에서 지난 7월 30일 헤즈볼라의 고위 사령관인 푸아드 슈크르가 암살됐다. 헤즈볼라 수뇌부 제거 작전을 수행하는 이스라엘에 의해 이날 다히예에서는 최고지도자인 하산 나스랄라가 폭사했다.
하레트흐레이크 AFP 연합뉴스


전날 IDF는 F15 전투기 편대를 띄워 헤즈볼라 지휘부 비밀회의가 열리던 레바논 수도 베이루트 남부 다히예에 초대형 폭탄 100여개를 퍼부어 나스랄라가 폭사했다. 그가 ‘무선호출기(삐삐) 폭발 테러’ 직후인 지난 19일 이스라엘을 향해 “레바논 남부로 들어오라”고 선전포고한 지 8일 만이다. IDF는 이날 밤에도 레바논 수도 베이루트를 타격해 헤즈볼라 중앙위원회 부의장 나빌 카우크를 제거했다고 로이터통신이 29일 보도했다.

카우크는 나스랄라의 사촌인 하셈 사피에딘과 함께 헤즈볼라의 유력한 후임 수장으로 꼽힌 인물이다. 전날 헤즈볼라 정보 기관의 고위 간부인 하산 칼릴 야신도 암살당했다고 헤즈볼라는 밝혔다.

이날 헤즈볼라는 “적과의 성전을 이어 가겠다”며 수도 텔아비브와 요르단강 서안을 향해 미사일 90발을 발사했다. 예멘의 친이란 후티 반군도 이스라엘 중부로 탄도미사일을 날렸다. 일간 타임스오브이스라엘은 “미사일 대부분이 격추됐고 일부 잔해가 예루살렘 인근에 떨어졌다”고 했다.

최근 이스라엘의 잇따른 공습으로 군 최고사령관 푸아드 슈크르, 특수부대 라드완 사령관 이브라힘 아킬 등 핵심 지휘부 8명 가운데 7명을 잃은 헤즈볼라는 ‘1인자’ 나스랄라까지 폭사해 당분간 전열 정비가 힘들어졌다. 나스랄라의 후임자가 정해지면 이스라엘이 또다시 암살에 나설 것이라는 관측이 제기된다.

올해 7월 말 하니야가 이란 수도 테헤란에서 폭사한 뒤 하마스의 새 지도자로 뽑힌 야히야 신와르는 나스랄라 피살 이후 모든 움직임을 멈췄다고 알아라비아가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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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하메네이는 나스랄라 사망 직후 발표한 성명에서 “역내 모든 저항군은 헤즈볼라를 지원하라”고 선언한 뒤 안전가옥으로 피신했다고 로이터통신이 전했다. ‘저항의 축’ 양 날개인 하마스와 헤즈볼라 수장이 모두 살해되자 하메네이 이란 최고지도자는 친구의 죽음에 깊은 충격을 받았지만 차분하고 실용적인 태도를 취했다고 뉴욕타임스(NYT)는 29일 전했다.

하메네이는 “저항 세력의 모든 세력이 헤즈볼라를 지지한다”며 “저항 세력의 수장인 헤즈볼라가 이 지역의 운명을 결정한다”고 말했다. NYT는 “중요한 건 하메네이가 이스라엘에 대한 모든 대응을 주도할 것은 이란이 아니라 헤즈볼라이며, 이란은 지원 역할을 할 것이라고 신호를 보냈다는 것”이라며 “그는 ‘이스라엘과의 전면전’과 ‘자기 보존을 위한 인내’라는 두 선택지 중 후자를 선택하는 듯 보인다”고 평가했다.

이란은 ‘세계 최강 비대칭 전력’으로 평가받던 헤즈볼라를 앞세워 이스라엘과의 ‘대리전’에서 상당한 전과를 거뒀다. 헤즈볼라가 1982년 창설 이후 이란을 위해 수행한 역할을 고려하면 테헤란이 현 상황을 좌시하긴 어렵다고 전문가들은 분석한다.

다만 이란이 헤즈볼라의 복수를 위해 직접 개입하면 이스라엘의 최고 후원국 미국도 뒤따라 참전할 수밖에 없다. 올해 7월 취임한 마수드 페제시키안 이란 대통령이 네타냐후의 ‘중동 확전 도발’에 넘어 가지 않으려 했던 그간의 노력도 물거품이 된다. 그렇다고 무대응으로 일관하면 ‘이란이 약해졌다’는 신호만 줄 뿐이다.

결국 온건파인 페제시키안 대통령이 군부 등 내부 강경파를 어떻게 설득할지에 따라 이란의 향후 행보가 결정될 전망이다. 나스랄라 사망 직후 하메네이가 소집한 이란 긴급 최고국가안보회의에서 향후 대응 방안을 두고 강경파와 온건파 사이에 의견이 갈렸다고 NYT는 전했다. 보수파 위원들은 “이스라엘을 선제 공격해 억지력을 구축해야 한다”고 주장했으나 온건파들은 “현 전력으로 이스라엘을 공격하면 이란 국가기간시설이 감당할 수 없는 타격을 받는다”고 우려했다.

류지영 기자
2024-09-30 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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