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순녀의 이사람] “정신건강, 선입견·편견부터 깨야… 사법입원제 진지한 논의 필요”/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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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순녀 기자
이순녀 기자
수정 2023-12-08 10:10
입력 2023-12-07 01:56

곽영숙 국립정신건강센터장

호주선 초등생부터 정신건강 교육
관계 맺기·학폭 대처법 등 가르쳐
인식 개선에 대중매체 역할 중요
극단적 사례 다루면 선입견 강화

중증정신질환 조기 치료 땐 호전
사전에 위험한 상황 발생 막아야
우울증에 섣부른 충고는 ‘역효과’
곁에 있어 주고 이야기 들어 줘야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자살률 1위, 아동·청소년 행복지수 꼴찌, 우울증 환자 100만명…. 세계 10위권 경제대국 대한민국에 드리워진 이 짙은 그늘을 걷어내기 위해 정부가 정신건강정책 혁신에 나섰다.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 5일 ‘정신건강정책 비전선포대회’에서 정신건강 문제를 국정 어젠다로 삼아 예방, 치료, 회복 등 전 과정을 체계적으로 관리하고 지원하는 방안을 마련하겠다고 약속했다.

“정신건강을 개인의 문제로 놔두지 않고 국가가 적극 나서서 해결하겠다고 하는 건 그만큼 상황이 심각하다는 얘기입니다. 대통령이 관심을 갖고 추진하는 정책이니 많은 변화가 있을 것으로 기대합니다.” 이날 회의에 참석했던 곽영숙(69) 국립정신건강센터장의 말이다. 그는 “정부의 이런 노력들이 우선은 정신건강에 대한 인식이 개선되는 계기가 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소아정신과 전문의와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로 40여년간 정신건강의학 분야에 매진해 오다 지난 1월부터 보건복지부 소속 공공 정신건강 중추 기관을 이끌고 있는 곽 센터장을 만나 정신건강의 중요성과 예방책 등에 대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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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영숙 국립정신건강센터장은 “코로나19를 거치며 청년층의 우울증이 특히 악화했다”며 “청년층 정신건강검진 주기를 10년에서 2년 단축해 조기 발견의 토대를 마련하는 것은 바람직하다”고 했다.  도준석 기자
곽영숙 국립정신건강센터장은 “코로나19를 거치며 청년층의 우울증이 특히 악화했다”며 “청년층 정신건강검진 주기를 10년에서 2년 단축해 조기 발견의 토대를 마련하는 것은 바람직하다”고 했다.
도준석 기자
-정신건강에 대한 관심은 늘었지만 정신질환자와 정신병원을 대하는 부정적 인식은 여전히 강하다.

“안타까운 현실이다. 선입견과 편견을 깨려면 ‘멘털 헬스 리터러시’(mental health literacy), 즉 정신건강 문해력을 키우는 교육이 중요하다. 정신건강을 이해하고 자신의 정신건강을 인식하는 능력을 기르는 교육을 선진국은 대부분 하고 있다. 호주에선 초등학교 저학년부터 정규교육 과정에 정신건강 항목을 포함시킨다. 의사 소통, 관계 맺기, 학교폭력 대처법 등을 가르친다. 조현병 같은 중증정신질환의 원인을 과학적으로 이해시키는 교육도 필요하다. 지식이 없으면 막연한 불안감이 생기고 혐오와 차별로 이어질 수 있다.”

-정신질환자를 평범한 이웃의 모습으로 그린 드라마 ‘정신병동에도 아침이 와요’가 호평을 받고 있다. 대중매체의 역할도 중요한 것 같다.

“미디어에서 정신질환을 어떻게 다루느냐가 사회적 인식에 큰 영향을 미친다. 정신질환자의 범죄 같은 극단적인 사례를 다룬 드라마를 보면 부정적인 선입견이 강화될 수밖에 없다. 반면 노희경 작가의 드라마 ‘괜찮아, 사랑이야’, ‘우리들의 블루스’는 각각 조현병과 우울증을 앓는 전문직 남녀를 주인공으로 내세워 내 가족, 친구 누구든 정신건강 문제를 겪을 수 있다는 점을 보여 줬다. 이런 기회가 많을 수록 정신질환에 대한 인식도 달라질 것이다.”

-중증정신질환자의 이상동기 범죄가 사회불안 요인인 것도 사실이다. 사법입원제 등이 대책으로 논의되고 있는데.

“중증정신질환자가 치료를 제대로 안 받으면 자해·타해 등 위험한 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 하지만 이런 사례는 극히 일부다. 극단적인 상황이 벌어지지 않도록 치료를 제때 하는 것이 중요한데 코로나19 시기에 집단 감염 문제로 정신병동이 문을 닫으면서 허점이 있었다. 정신질환자를 입원시키려면 2명 이상의 보호 의무자 신청과 서로 다른 병원에 소속된 2명 이상 전문의의 일치된 소견 등 절차가 까다롭다. 입원 치료를 빨리 받으면 상태가 호전될 수 있는 환자에 대해선 법의 개입을 진지하게 논의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우리나라의 우울증 유병률과 자살률은 왜 이렇게 높은가.

“원인을 한 가지로 얘기할 순 없다. 다양한 요소가 작용한 결과라고 본다. 끊임없는 경쟁과 차별, 상대적 박탈감, 좋은 일보다 안 좋은 일에 신경을 쓰는 부정 편향성 등으로 인해 스스로 불행하다고 느끼는 청소년들이 늘고 있다. 취업 좌절을 경험한 청년들이 겪는 우울증도 심각하다. 우울증으로 깊은 실의에 빠져 더이상 상황이 나아지지 않을 것이라고 판단될 때 자살에 이르는 경우가 많다. 우울증을 조기에 치료해야 자살을 막을 수 있다. 자살을 예방하는 방법은 두 가지다. 우선은 심리적으로 고립되거나 소외감을 느끼지 않도록 항상 타인과의 교류를 유지하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회복력이다. 바닥까지 추락했다가 다시 튀어오르는 번지점프처럼 감정이 바닥을 쳐도 다시 기운을 낼 수 있는 마음근육을 키워야 한다. 건강한 사람도 위기나 고난, 스트레스를 경험하면 얼마든지 정신질환을 앓을 수 있다. 심리방역을 가르치는 정신건강 교육이 필요한 이유다.”

-주변에 우울증으로 힘들어하는 사람이 있다면 어떻게 대해야 할까.

“곁에 같이 있어 주고, 이야기를 들어 주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조심해야 할 것은 섣부른 충고다. ‘마음을 굳게 먹어라’ 같은 조언은 말하는 사람 입장에선 격려와 응원이지만 듣는 사람에겐 의지가 약하다는 뜻으로 잘못 전달될 수 있다. 힘들다는 사실에 공감해 주는 것이 먼저다. 상태가 오래 지속되거나 악화하면 전문가 상담을 받을 수 있도록 도와줘야 한다.”

-국립정신건강센터의 역할은.

“1962년 정신의학 진료와 연구, 교육을 관장하는 국가기관으로 처음 문을 연 국립정신병원이 모태다. 1982년 국립서울정신병원, 2002년 국립서울병원으로 명칭을 바꿨다가 2016년 국립정신건강센터로 거듭났다. 의료부에서 24시간 정신응급진료실과 재활 클리닉 운영 등 치료와 재활을 담당하고 정신건강사업부에서 국민 정신건강 증진과 인식 개선을 위한 다양한 사업을 하고 있다. 정신건강연구소는 정신건강 실태조사와 정책 연구 개발을 한다. 사회적 재난과 사고 경험자를 위한 국가트라우마센터도 운영한다. 정신건강과 연관된 모든 사업을 하고 있다.”

-국가트라우마센터에선 어떤 일을 하나.

“집단트라우마를 겪는 이들의 심리적 회복을 돕는 기구다. 2013년 재난 현장을 방문해 위기 대응 활동을 펼쳤던 심리위기지원단 역할을 확대해 2018년 4월 개소했다. 찾아가는 재난심리지원 서비스인 ‘마음 안심버스’ 등으로 초기에 심리적 충격을 완화하고 재난 이후 일상생활 복귀에 어려움을 느끼는 이들을 위한 치료프로그램을 운영 중이다. 이태원 참사와 관련해서도 유가족과 관계자 약 7000명이 상담을 받았다. 응급구조대원과 의료진 등 재난대응인력이 경험하는 직무 스트레스를 관리하는 프로그램도 제공한다. 매년 4월 트라우마 치유주간을 열어 일반인 대상 트라우마 예방 교육을 실시하는 등 국민 인식 개선에도 힘쓰고 있다.”

-센터장 재임 동안 이루고 싶은 일은.

“몸이 아프면 병원에 가듯 마음이나 정신이 아프면 망설이지 않고 방문할 수 있는 친근한 기관이 되도록 노력하겠다. 센터에서 치료와 재활을 받고 완치된 환자와 가족 5명이 우리 상담 직원으로 일하고 있다. 치료에 그치지 않고 일상 회복으로까지 이어지는 사례가 많아지도록 힘쓰겠다. ”

■곽영숙 센터장은

서울대 의대 전공의, 소아정신과 전임의를 거쳐 국립정신건강센터 전신인 국립서울병원에서 13년간 소아정신과장으로 일했다. 재직 당시 소아자폐증진료소를 열어 자폐증과 발달장애 아동 등 소아청소년 환자를 위한 다각적이고 체계적인 치료의 길을 열었다. 제주대 의대 개교 직후 교수로 임용돼 20년간 근무하면서 제주지역 정신건강센터, 학교정신건강 사업 등에 참여했다. 대한소아청소년정신의학회 이사장, 아동정신치료의학회 회장, 한국학교정신건강의학회 회장을 지냈다.

이순녀 논설위원
2023-12-07 2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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