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예술계 정부 입김서 자유롭게… 시민·기업 후원 대폭 확대해야”[최광숙의 Insid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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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광숙 기자
최광숙 기자
수정 2023-10-09 00:06
입력 2023-10-09 00:06

정병국 한국문화예술위원장

최근 정율성 역사공원 이념 논쟁에 이은 임옥상 작가의 위안부 조형물 철거 논란과 관련, 예술 작품과 작가의 정치적 이념 및 개인사 간 연관성에 대한 사회적 논의가 벌어졌다. 5선 국회의원 출신 정병국 한국문화예술위원장을 최근 서울 종로구 예술가의집에서 만나 문화예술과 정치, 예술의 창작 자유를 위한 정부 역할, 문화예술 후원 확대 방안 등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음악, 미술, 연극, 문학 등 순수예술 지원 사업을 하는 그의 사무실 벽에는 스웨덴어로 ‘지원하되 간섭하지 말라’는 글이 적힌 포스터가 걸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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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병국 문화예술위원장은 “올해 출범 50주년을 맞는 예술위의 순수예술 지원은 대한민국을 문화강국으로 만든 뿌리가 됐다”며 “정부 지원도 중요하지만 기업과 시민들의 후원이 있어야 예술이 정치로부터 자유로워진다”고 강조했다. 도준석 기자
정병국 문화예술위원장은 “올해 출범 50주년을 맞는 예술위의 순수예술 지원은 대한민국을 문화강국으로 만든 뿌리가 됐다”며 “정부 지원도 중요하지만 기업과 시민들의 후원이 있어야 예술이 정치로부터 자유로워진다”고 강조했다.
도준석 기자
-청바지가 잘 어울린다. 정치인 물이 쏙 빠진 것 같다.

“예전 국회의원 할 때 양복만 입고 다녔는데 지금은 양복 입으면 너무 불편하다. 편하게 청바지에 캐주얼 재킷을 입고 다닌다.”

-내년 총선 출마는.

“생각 없다. 예술위에 와서 보니 할 일이 너무 많다. 국회에서 이전투구하는 것보다 훨씬 더 생산적이고 보람을 느낀다.”

●예술위 국회보다 생산적, 출마 뜻 없어

-예술위는 공공기관으로는 드물게 기관장을 임명하지 않고 선출하는데.

“지난 1월 위원 12명의 호선으로 위원장으로 선출됐다. 제가 국회 문방위원으로 있을 때 위원회 전신인 문예진흥원이 지나치게 정부 간섭을 받아 자율성을 가지고 일할 수 있도록 위원회로 바꾸자고 제안했다. 정치인 출신 위원장은 처음이다. 정치인이니까 외풍을 막아 주는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다.”

-국회 문방위원과 문화체육관광부 장관도 지냈는데.

“국회에서 11년간 문방위에서 활동하면서 정부 문화정책을 감시·비판하고 장관으로 정책을 실행하기도 했다. 하지만 현장의 문화 정책 고객들에게 그 정책이 어떻게 전달되는지 점검하기 어려웠다. 순수 문화예술인들을 직접 만나고 정책이 어떻게 집행되는지를 들여다볼 수 있으니까 국회의원이나 장관 때를 되돌아보게 된다.”

-중공군과 북한군 국가를 만든 정율성 역사공원 사업이 논란이 됐다.

“정율성 공원 조성 사업은 국가가 아니라 광주광역시의 지원으로 추진됐다. 만약 정부 예산이 들어가는 사업이라면 지원하지 않았을 것이다.”

-위안부 조각상을 만든 임옥상씨의 성추행 사건이 문제가 되면서 그의 작품이 철거되고 있다.

“일제강점기 위안부를 기억하자는 작품을 성추행범 조각가가 만드는 것은 문제가 있다. 서울시가 남산에 있는 그의 위안부 관련 작품을 철거했는데, 아무리 작품성이 뛰어나다 하더라도 대다수 서울시민이 철거에 찬성한다면 철거하는 게 마땅하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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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병국 문화예술위원장은 “지속가능한 순수예술 생태계를 조성하기 위해 일상생활 속에서 문화예술을 향유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면서 “어린 시절부터 문화적 경험을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도준석 기자
정병국 문화예술위원장은 “지속가능한 순수예술 생태계를 조성하기 위해 일상생활 속에서 문화예술을 향유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면서 “어린 시절부터 문화적 경험을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도준석 기자
●예술품·작가 삶 분리할 수 없다고 생각

-일각에서는 예술가의 삶과 작품을 분리해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예술 작품과 작가의 삶이 완전히 분리될 수 없다고 생각한다. 작품은 작가의 영혼이 담긴 것 아닌가. 작품을 어떻게 평가하는지는 최종 소비자의 판단이지만, 누가 성추행범의 작품을 보려고 하겠나.”

-요즘 윤석열 대통령이 반국가 세력 등을 거론하며 ‘이념’을 강조하고 있다. 문화계에 영향이 없을까.

“윤 대통령은 전임 정부 때 벌어진 사태를 바로잡으려는 ‘비정상의 정상화’ 차원에서 보수 이념을 강조한 것으로 보인다. 문화예술 부문에 대한 그런 언급은 없었다. 원칙을 가지고 문화행정을 펼치면 된다.”

-예술위는 박근혜 정부 시절 문제의 블랙리스트 집행기관이었다. 무슨 문제가 있었나.

“문화예술 분야에서 보수·진보를 구별해 이념을 잣대로 차별하는 것은 있을 수 없다. 창작의 자유가 있는 만큼 보수건 진보건 정부가 지원을 배제해서는 안 된다. 박근혜 정부 때 블랙리스트 문제가 있었는데 특정 예술인을 지원 대상에서 배제하는 명단이 있어서는 안 되고, 있을 수도 없는 일이다. 반대로 끼리끼리 편중되게 운영되는 화이트리스트도 있었다. 예술가들이 그런 것에 휘둘리지 않고 순수 창작 활동에 전념하도록 하는 게 제 역할이다.”

-정부의 간섭이 없을 수 있겠나.

“얼마 전 스웨덴 출장길에 미술관을 갔는데 ‘지원하되 간섭하지 말라’는 포스터를 발견했다. 그 말에 공감한다.”

-정권 교체 때마다 문화계의 이념 논쟁이 생기는 이유는 뭔가.

“예술계에 대한 정부 지원이 압도적 비중을 차지하기 때문이다. 예술단체 재원 조달 내역을 보면 공공지원금 80%, 자체 수입 20%로 이루어져 있다. 이 중 기부금은 2%대에 불과하다. 반면 미국은 공공지원금 10%, 자체 수입 90%이며 특히 기부금이 20%를 차지한다. 정부 지원금을 주는 문화 예술 공모사업에 응모한 예술가들은 정부 성향에 맞춰 제안서를 작성하는 경우가 있다. 공모 당선율이 22%에 불과해 정부 지원을 받기 위해 정치적인 예술인들이 나타날 수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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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 위원장은 “취임 후 예술위 청사로 사용하던 ‘예술가의 집’을 리모델링해 예술가와 시민들이 이용할 수 있는 열린 공간으로 꾸몄다”면서 “매주 월요일 제가 직접 내린 커피를 예술가들에게 대접하며 소통하고 있다”고 말했다.  도준석 기자
정 위원장은 “취임 후 예술위 청사로 사용하던 ‘예술가의 집’을 리모델링해 예술가와 시민들이 이용할 수 있는 열린 공간으로 꾸몄다”면서 “매주 월요일 제가 직접 내린 커피를 예술가들에게 대접하며 소통하고 있다”고 말했다.
도준석 기자
●정부든 작가든 정권 홍보 유혹 떨쳐야

-과거 문화 예술을 통한 정권 홍보도 있지 않았나.

“어느 정권이든 그런 유혹을 받을 수 있는데 그건 올드한 생각이고 별 실효성도 없다. 정치적 의도가 개입된 예술 작품은 관객들이 보지 않는다. 작가든 정부든 그런 유혹을 떨쳐야 예술이 길게 갈 수 있다. 잘나가는 예술가는 정치에 휘둘리지 않는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방안은.

“일반 시민과 기업의 문화 예술 후원을 대폭 확대해야 정부의 굴레에서 벗어날 수 있다. 요즘 기업의 ESG(환경·사회·지배구조) 경영에 문화예술 투자도 포함된다. 기업의 문화예술 후원 실적을 통계화해서 가칭 ‘문화지수’로 평가하고 소비자들은 그 문화지수를 근거로 기업의 사회적 기여를 판단하는 방안을 검토할 수 있다.”

-선진국에 비해 문화예술 후원에 대한 국민 인식이 낮다.

“문화예술 후원 캠페인 ‘예술나무 운동’을 통해 후원 문화를 확산해야 한다. 예술가들이 자체적으로 후원금을 유치해 자생력을 기를 수 있도록 하는 게 목표다. 지난달 예술위 출범 50주년을 맞아 ‘아트 포레스트 페스티벌’을 개최한 것도 후원 경험이 없는 분들에게 문화예술의 가치와 후원의 중요성을 알리고 싶어서였다.”

●‘예술나무 운동’으로 후원 문화 확산을

-문화예술인들의 창작 활동을 지원하는 문예진흥기금 고갈이 최대 현안인데, 대책은.

“영화관·박물관 등의 입장 티켓에 부과되던 문화예술진흥기금 모금이 2003년 위헌 판정을 받은 이후 기금이 급격히 줄어들고 있다. 기금이 고갈되면 지원은 축소된다. 지난해 900억원이던 기금 적립금을 올해 1200억원까지 늘릴 계획이다. 안정적 재원 조달을 위해 체육기금·복권기금 같은 공공재원, 기부금 등 민간 재원뿐 아니라 골프장 운영 수익 확대 같은 자체 수입 증대를 위해 노력하고 있다.”

-요즘 K문화가 세계를 휩쓸고 있다. 문화예술계 발전을 위한 과제는.

“50년 전 배고팠던 시절 문화예술위를 출범시키고 기금을 조성했는데 그게 문화강국의 토대가 됐다. 그런데 정부의 문화예술 지원은 문화 콘텐츠 산업에 집중되고 있다. 올해 문화 콘텐츠 산업 예산은 1조 4000억원인 반면 순수예술 분야는 1300억원에 그쳤다. 순수예술 기반이 없으면 콘텐츠 생산이 어렵다. 문화 콘텐츠 산업의 경우 정부는 인큐베이팅하는 데만 지원하면 되는데 많은 수익을 남기는 사업 분야까지 지원하는 건 문제가 있다. K문화의 인기로 제품 판매 증가 등 과실을 챙기는 기업들이 후원에 적극 나서야 한다.”

■ 정병국 위원장은

1987년 김영삼 전 대통령의 통일민주당 총재 시절 정계에 입문한 상도동 막내다. 5선(16~20대) 국회의원 출신으로 당시 남경필, 원희룡 의원 등과 ‘남원정’으로 불리며 개혁 소장파로 활동했다. 국회 문화체육방송통신위원장,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을 지낸 문화정책통이다. 문화예술계 지원을 위한 문예진흥기금 확충과 사회적 후원 확대에 적극 나서고 있다.

최광숙 대기자
2023-10-09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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